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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과 저작권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을 통해 본 인간 본성에 관한 통찰

고대 철학자들이 간파한 인간 본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어

※ 이 기사는 일부 수정·보완을 거쳐 코리아 트리뷴(www.koreatribune.co.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사이보그와 인간이 공존하는 26세기 세상을 그린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이 지난 설날 개봉한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 문명이 발달한 세상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은 별반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아니, 수천 년 전과 비교해 보아도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소위 ‘가진 자’들은 사회의 지배계층을 형성하면서 자기들의 혈통을 보존하려 하고, 피지배층을 억압하며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려 한다. 주거지역은 당연히 구분하여 자기들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쾌적한 주거생활을 즐기려는 욕망도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보다 1인 독재체제를 원하며, 정권을 잡은 독재자는 지배구조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 그 좋은 자리를 놓고 세상을 떠날 수 없으니 종국에는 불로장생을 꿈꾸게 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인간 본성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26세기에도 인간의 본성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하나씩 살펴보자.


영화 속 세상은 공중도시(자렘)와 고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 자렘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렘에 사는데,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추방되기도 한다. 이도와 시렌은 그들의 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렘에서 쫓겨났다. 고철도시 주민들은 자렘을 위해 일하지만, 자렘에 갈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돼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통치자, 군인, 생산자로 나누어진다고 하였다. 이상국가에서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하며, 지혜로운 통치자 계급이 국가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화에서는 절대권력자 노바와 그의 측근들이 통치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대추락 전에 존재하던 경찰, 현재 고철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는 헌터 워리어를 군인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고철도시 주민들이 생산자 계층에 해당된다. 고철도시 주민이 자렘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터볼의 최종 챔피언이 되는 것인데, 그 기회도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수준에 불과하다.


소위 지배계층이라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혼인 관계를 맺어 혈통을 보전하려는 경향이 있다. 플라톤은 국가의 악(惡)의 원인을 사유(私有)로 보고, 국가를 통치할 수호자들을 대상으로 재산공유제와 함께 처자공유제를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가장 훌륭한 남녀들이 가장 건강한 연령대에 자녀를 많이 낳도록 하여 수호자 집단을 유지하고, 열등한 남녀들은 가능한 한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하면서 그 자녀들이나 불구로 태어난 아이들은 은밀한 장소에 감춰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수한 혈통을 보존하여 통치자로 활용하려는 조치인 것이다.
그러면서 플라톤은 통치자를 양성하기 위한 엘리트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다. 수호자가 될 자질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만 공교육의 혜택을 제공하도록 하고, 상공인이나 농부 등에게는 국가에 복종하기 위한 정도의 교육만 시키도록 했다.


현대 사회의 도시 내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이 분리되는 현상을 ‘주거분리’라고 한다. 고소득층의 주거지역과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은 인접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 경계지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공간구조에 관한 이론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버제스의 동심원이론, 호이트의 선형이론, 해리스와 울만의 다핵심이론 등에 따르면 저급주택지구는 중심업무지구(CBD) 근처에 형성되고 고급주택지구는 교외로 이동한다. 이들 이론은 대체로 미국 도시의 현상을 연구한 것으로 그 원인까지는 밝혀내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가진 자’들의 주거 욕구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영화에서 고철도시 주민들은 각종 물자를 생산하여 튜브를 통해 자렘으로 올려 보내고, 자렘에서는 고철도시로 쓰레기를 버린다. 고철도시 주민들은 자렘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노바에게 늘 감시당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대체로 노예제를 긍정하였다. 플라톤도 그러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재류외인이나 노예 등은 시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며, 억압하는 자와 억압 받는 자가 항상 대립한다고 하였다.


고철도시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무자비한 세상으로 그려진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묘사한 자연 상태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노바가 헌터 워리어를 통해 적당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자연법이 제시되거나 사회계약을 통해 통치권이 수립되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영화에서 절대권력자 노바는 강력한 힘으로 고철도시를 통제하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며, 노바는 과연 정의롭게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국가공동체를 마치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통치하는 1인 지배체제인 정체(政體)를 참주정체라 하였다. 즉 노바는 참주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고대 철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던 참주로 전락해 버린 노바의 모습에서, 임금이 임금답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의 최대의 악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본성에 따른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지 않고 다른 일에 간섭하거나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노바는 마치 이 이론에 충실하듯 고철도시 주민들에게 일정한 임무를 부여하며 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노바 자신이 가장 큰 악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회의 악은 인간의 못됨(악덕)에서 초래되고, 이 못됨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그러니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법과 교육에 의한 품성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바는 자기 통치권의 근거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혹시 왕권신수설에 의존하고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무지의 소치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노바에게는 절대권력자 맞춤형 법과 교육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노바의 통치권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구도 감히 맞설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두려워하는 자에 대해서는 처벌이라는 공포를 의식하므로 결코 모르는 척할 수 없다고 하였다. 노바의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벡터나 그루위시카 등 심복들이 죽는 순간까지 노바에게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로크도 <통치론>에서 절대권력자가 하는 일에 감히 이의라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 그의 검에 침묵하게 될 것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영화에서 더 이상 노바에게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시렌은 뇌와 눈동자 등이 분해되어 노바에게 바쳐지는 신세가 되었고, 벡터는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액튼 경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사람의 지배보다 법의 지배가 낫다고 하면서, 법의 지배는 신과 이성의 지배이고 사람의 지배는 야수적 요소라 하였다.
고철도시에도 법이 있었다. 고철도시 주민들은 자렘에 갈 수 없다거나, 총을 소지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노바는 법의 형식을 빌려 고철도시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는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의회에서 제정한 것이 아니므로, 결국 야수적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참주에 불과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란 사람들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게 하고, 옳은 태도로 행동하게 하며,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성품이라고 하였다. 플라톤이 구상한 이상국가, 즉 정의가 실현되는 국가는 교육을 잘 받아 전문적인 자질을 갖춘 철인(哲人)이 이성적으로 통치하는 국가였다. 지혜의 덕을 갖춘, 절도 있고 신(神)과도 같은 철인이 선(善)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진리에 입각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노바는 통치자로서 실격이다.
국가 구성에 관한 현대적 이론인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노바는 사회계약을 위반하였으므로, 국민이 계약을 파기하고 노바를 해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제도권 내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로크가 <통치론>에 기술한 대로 오로지 하늘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고철도시 주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하기에는 도저히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알리타가 악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노바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영화에서는 고철도시를 지배하기 위한 갖가지 거짓말이 동원되고 있다. 100만 크레딧을 내면 자렘에 보내준다는 약속, 알리타를 모터볼 선발전에 출전시키면 자렘에 보내준다는 약속 등이 그것이다. 물자용 튜브에 사람은 탈 수 없다는 규칙에 대해서도 휴고는 의문을 제기한다. 통치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용인될 수 있는가.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치자들은 피치자들의 이익을 위해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써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신의가 두텁다거나 겉과 속이 같다는 등의 기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 오히려 해롭다면서, 단지 이런 기질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유익하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의 통치를 위해 필요하다는 명목하에 거짓말까지 용인하려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인 듯하다.


인간에게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웠던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염원을 품고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망한 사람의 부활을 준비하며 시체를 미라로 만들고 무덤 안에 온갖 생필품을 같이 넣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공장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는 등 영생불사의 꿈이 실현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영화에서 노바는 “불멸의 삶을 즐기는 방법은 남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라며 우수한 뇌를 요구하는 등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영화에서는 인간 본성의 순수한 면도 보여주고 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착한 것은 마치 물이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면서, 혹여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외부의 힘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하였다.
영화에서 업그레이드 된 알리타가 휴고에게 자기 힘의 원천인 심장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것도 줄 수 있다고 하는 장면, 휴고가 알리타를 사랑하게 되면서 사이보그의 부품을 잘라내어 파는 일을 그만 두는 장면, 알리타와 휴고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하여 시렌이 노바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 등은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는 맹자의 성선설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부터 약 20~30년 후에는 인공지능(AI)이 인류의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 한다. 그들이 자가증식하며 사는 세상은 어떤 본성이 지배하게 될까? 인간처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거짓말과 권모술수를 동원해 권력을 공고히 하려 할까? 아니면 인류의 역사를 모두 학습하였으니 인간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까?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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